공지사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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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이 전쟁 준비 하나도 안하고 있다가 임진란 터졌다는 인식이 지배적인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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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ekZ6c678 작성일19-08-20 07:18 조회9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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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제론 나름대로 조선은 준비를 했음. 물론 준비할 시간이 택도 없이 부족했으며, 한다고 한 준비가 부족했던 건 맞고.



보통 조선까들이 들고오는 게 김성일의 이야기임


서인인 황윤길과 같이 일본 정탐하고 왔고 전쟁 날 거 예견했는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고작 당파싸움하려고 전쟁 안난다고 구라치고 거기에 선조가 속아 전쟁 준비를 안했다는 이야기..



근데 저 둘을이 일본에 갔다온 해가 혹시 언제인지 아는 사람 있음?


정답은 1591년임. 임진왜란 일어나기 바로 전 해.... 


많은 사람들은 마치 그 김성일이 일본 갔다온 것과 임진왜란 발발 사이의 텀이 꽤 길어서 충분히 준비할 시간이 있었다고 생각하는데


현실은 그런거 없다...



게다가 그런 인식(전쟁날거라고 생각 안해서 준비 안함)과 달리 실제로 조선은 전쟁 준비를 긴급하게 하고 있었음.




삼가 살피건대, 소방에서는 지난 신묘년(1591년) 여름에 일본의 적추(賊酋)가 요승(妖僧) 현소(玄蘇)를 보내어 와서 변문(邊門)을 두들기고 투서(投書)하였는데, 그 말이 아주 도리에 어그러졌으며 소방을 협박하여 저들을 따르게 하려는 것이었습니다. 소방의 군신은 이를 절통하게 미워하고 근심하면서 반드시 적변(賊變)이 있을 것을 알고 곧 사신을 보내어 경사(京師)로 달려가 아뢰게 하였습니다. 또 순찰사(巡察使) 김수(金睟)를 경상도로, 이광(李洸)을 전라도로, 윤선각(尹先覺)을 충청도로, 순변사(巡邊使) 신립(申砬)·이일(李鎰)을 경기·황해도로 보내어 군정(軍丁)을 점열(點閱)하고 군기(軍器)를 수조(修造)하며 성지(城地)를 선축(繕築)하게 하였습니다.


또 경상도는 전에도 적침을 받은 땅이므로 부산·동래·밀양·김해·다대포(多大浦)·창원·함안 등지의 성을 증축하고 참호도 깊이 팠습니다. 내지(內地)의 성이 없는 곳으로서, 이를테면 대구부(大丘府)·청도군(淸道郡)·성주목(星州牧)·삼가현(三嘉縣)·영천군(永川郡)·경산현(慶山縣)·하양현(河陽縣)·안동부(安東府)·상주목(尙州牧)같은 곳은 다 백성을 징발하여 성을 쌓았습니다. 또 인정이 안일에 젖어 태만해지는 것을 염려하여 국왕이 근신(近臣) 승지(承旨) 등의 관원을 잇달아 보내어 살펴보고 독촉하게 하고, 어기거나 게을러서 시기를 놓친 자에게는 경중에 따라 처벌하였습니다.


-선조실록 45권, 선조 26년 윤11월 14일 갑오 2번째기사



선조 26년이면 1593년. 임진란 터진 이듬해의 기록임. 정확히는 선조가 명나라에 이러이러했다 라고 보고한 내용.


특히 왜구의 주 침입지로 예상되는 경상도 일대에 성을 증축하고 참호도 파고 새로 성을 쌓기도 하고...




게다가 전쟁 준비 시작한 게 저 사신 갔다와서도 아님


다들 이순신 장군님 위인전은 읽어봤을테고. 이순신 장군님이 정읍 현감으로 있다가 갑자기 전라 좌수사로 되는 이야기는 들어봤을거임.


현감이면 종6품. 수사면 정3품. 당시까지 이순신 장군님이 뭐 엄청난 전공을 세운 것도 아닌데 갑자기 6단계 특진?


단순히 친구인 류성룡 빽으로???? 이걸 이상하다고 생각해본 사람 없음?


전쟁 이전의 이순신 장군님이 쌓은 굵직한 커리어라고 해봐야 북방에서 여진족 몇번 상대한 게 끝인데..



왜 그랬을까? 정답은 간단하지. 전쟁을 예견하고 유능하다고 생각되는 장수들을 주요 보직에 투입해서 전쟁준비 시킨 거임.


당시 이순신 하나만 특진시킨 게 아님



비변사 낭청이 아뢰기를, "이천·이억기·양응지·이순신을 남쪽 요해지에 정송(定送)하여 공을 세우게 하라는 상의 분부가 지당합니다." 하니, 아뢴 대로 하라고 전교하였다.


- 선조실록 25권, 선조 24년 2월 12일 기묘 2번째기사



선조 24년면 1591년. 그해 2월이면 김성일이 돌아와서 장계 올리기 직전의 일임.


그리고 사실 그보다 한해 전에 미리 승진시켜놓으려고 하다가 그때 한번 간관 반대가 심해서 취소하기도 했었으며.. 



비변사에게 무신(武臣)을 불차 채용(不次採用)한다고 하자, 이산해는 손인갑(孫仁甲)·성천지(成天祉)·이순신(李舜臣)·이명하(李明河)·이빈(李薲)·신할(申硈)·조경(趙儆)을, 심수경(沈守慶)은 이경(李景)·신할·이용준(李用濬)·박진(朴晉)을, 유홍(兪泓)은 이혼(李渾)·왕경조(王景祚)·이용준(李用濬)·변응성(邊應星)·유몽경(柳夢經)·유연(兪淵)을, 정언신(鄭彦信)은 손인갑(孫仁甲)·성천지·이순신·이명하(李明河)·이시언(李時言)·한인제(韓仁濟)·이언함(李彦諴)·정담(鄭湛)·김당(金鐺)을, 윤탁연(尹卓然)은 유희선(柳希先)·이종장(李宗張)·윤안성(尹安性)을, 강섬(姜暹)은 유염(柳濂)·정눌(鄭訥)·문몽헌(文夢軒)·김경로(金敬老)·정발(鄭撥)·정득렬(鄭得說)을, 변협(邊協)은 조경·신할·이복남(李福男)을, 이진(李戩)은 신할·김순(金徇)·변응성을, 최원(崔遠)은 이경(李景)·전협(田浹)을, 신립(申砬)은 최미수(崔眉壽)·변응성·변응정(邊應井)·이지시(李之詩)·정현룡(鄭見龍)·이범(李範)을 추천하였다.



선조실록 23권, 선조 22년(1589년) 1월 21일 기사 1번째기사



요충(要衝)이 되는 고을에 호(濠)를 파는 일과 방어사(防禦使)나 조방장(助防將) 중에 가합한 사람을 골라서 큰 고을의 수령으로 차견(差遣)할 것을 전교하였는데, 남방 연해(沿海)에 적로(賊路)의 요충이 되는 열읍(列邑)이 매우 많고 염려되는 기미가 바로 조석(朝夕)에 있으니 성(城)을 쌓고 호(濠)를 파는 모든 방어 도구를 조금도 소홀히 할 수 없습니다. 그러나 현재와 같은 흉년에 굶주린 백성을 조발(調發)한다는 것은 지극히 염려되는 일이니 본도의 감사로 하여금 요해처(要害處)가 되는 고을 중에 더욱 허술한 데를 자세히 심사 개록(開錄)하여 계문(啓聞)한 뒤에 다시 의논하여 시행하소서. 또 큰 고을의 수령을 체차(遞差)하는 데는 방어사나 조방장 중에 가합한 사람을 골라 차견(差遣)하는 것이 지당합니다. 다만 낱낱이 적출(摘出)해내는데 매우 시끄러울 것이니, 나주 목사(羅州牧使) 윤우신(尹又新)부터 먼저 체차하는 것이 어떻겠습니까?"


"아뢴 대로 하라. 서득운을 전라 병사로, 이혼을 우수사로, 신할을 경상 좌수사로, 조경을 제주 목사로 삼고자 한다. 이옥과 이경은 본처(本處)를 고수해야 하고 이빈은 범한 죄가 가볍지 않으니 경솔히 수용(收用)할 수 없다. 또 이경록(李慶祿)·이순신(李舜臣) 등도 채용하려 하니, 아울러 참작해서 의계(議啓)하라."


선조실록 23권, 선조 22년(1589년) 7월 28일 계유 1번째기사



이미 1589년에 이순신 외에도 여러 무신들을 추천받아 등용하고자 했고.


저런 게 다 전쟁 준비할 생각 없었으면 갑작스레 할 이유가 뭐가 있겠음?





간단히 정리하자면


'대중의 인식과 달리 조선은 일본은 침입을 예상하고 전쟁 준비에 열심이었다' 정도...



물론 10만 이상이 바다 건너올 거라는 건 솔직히 예상하기 힘들기도 했고. 애초에 조선이 가진 일본에 대한 정보가 부족하기도 했음


또한 준비한다고 부랴부랴하긴 했지만. 근 2백년간 평화가 지속되면서 군기가 문란해진 상태인데 그거를 되돌리기엔 시간이 부족했지.


+ 전쟁 초기 원균이나 신립같은 작자들 삽질 등이 겹치면서 조선은 전쟁 초반 너무 허무하게 수도인 한양까지 내주게 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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